혼인무효는 실무상 드뭅니다. 어떤 부분때문에 속았다, 이런 사안은 대부분 이혼판결을 내리지, 혼인무효 판결을 내리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아래 판결에서는 혼인무효가 인정되었는데, 그 주된 사유는 신고의사를 결정할 때, 신고자 중 1인인 남편에게 제대로 된 의사능력이 부존재한다고 본 것입니다.
(부산가정법원 2019. 1. 31. 선고 2016드단15613 판결)
목차
사실 관계
甲은 조립식철골 작업 중 추락하여 두개골 함몰, 분쇄, 복합성 개방형골절, 양측외상성 경막하 출혈, 대뇌 타박상 등의 상해를 입고 수술을 받았으나 이후에도 인지저하, 보행장애, 일상생활동작수행 장애로 인하여 재활 치료를 받아야 했고, 지적장애 3급 판정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사고 이전에 甲과 동거한 적이 있는 乙이 甲이 입원한 병원에 찾아와 혼인신고를 하자고 제안한 후, 甲의 가족이 없는 상황에서 甲을 데리고 나가 병원 인근의 주민센터에서 甲의 주민등록증 재발급신청을 하여 임시신분증을 발급받고 면사무소를 방문하여 혼인신고를 하였습니다.
민법의 혼인 무효 사유
민법 제815조 제1호가 혼인무효의 사유로 규정하는 ‘당사자 간에 혼인의 합의가 없는 때’란 당사자 사이에 사회 관념상 부부라고 인정되는 정신적·육체적 결합을 생기게 할 의사의 합치가 없는 경우를 의미합니다.
혼인은 부부관계의 창설을 목적으로 하는 신분행위이고, 가족을 형성하는 기초가 되는 행위로서, 한 개인의 일생을 좌우하는 중차대한 결정사항인 점, 만 18세에 다다르면 혼인을 할 수 있으나, 미성년자인 경우나 질병, 장애 등으로 인하여 정신적 제약이 있는 피성년후견인의 경우 부모 또는 성년후견인의 동의를 얻어야 하는 점(민법 제807조, 제808조) 등을 종합하여 보면, 혼인의 합의를 유효하게 하기 위하여는 일반적인 재산상 법률행위에 필요한 정도를 넘어 상당한 정도의 정신적 능력 또는 지능이 있어야 의사능력이 인정된다고 보고 있습니다.
甲의 일상 대화
이 사건 혼인신고 당시 甲이 乙의 ‘자기야, 내가 누구야? 응?’이란 질문에 ‘와이프’라고 답하고, ‘그래 그럼 나하고 혼인신고 하러갈까?’라는 질문에 ‘응’이라 답한 사실, 乙은 ‘그래 가서 혼인신고 하고 오자. 그래야 같이 살 수 있는 거야’라고 말하자, 甲 이 ‘알았어’라고 말한 사실은 인정되었습니다.
甲에 대한 신체감정 결과
甲의 지능은 매우 낮은 수준(전체 지능 69, 언어이해 70, 지각추론 82, 작업기억 75, 처리속도 78)으로, 정신연령 812세에 해당하였습니다. 즉, ‘혼인’ 또는 ‘결혼’의 개념에 대해 단어가 가지는 사회적인 의미나 상황에 대한 고려 없이 특정 단어로서의 매우 제한적이고 사전적인 개념으로만 이해했을 가능성이 있었습니다.
법원의 판단
법원은 甲이 乙을 와이프라고 호칭하고 혼인신고 제안을 받아들이는 답변을 했다고 하더라도 이 사건 사고의 정도, 사고 이후의 甲의 지능에 비추어 이 사건 혼인신고 당시 甲은 乙을과 대등한 입장에서 혼인생활을 영위하기 어려운 상황으로 보였습니다. 실제 乙은 사고 이후 법원에 甲에 대해 성년후견 개시 심판을 청구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甲은 향후 乙과 대등한 관계에서 혼인생활이 불가능하다는 점에 대한 인식을 하지 못한 채 乙의 주도하에 혼인신고에 나아갔다는 점에서 이 사건 혼인신고 당시 甲에게는 사회관념상 부부라고 인정되는 정신적·육체적 결합을 생기게 할 의사능력은 결여되었다고 보아, 甲과 乙 사이의 혼인은 민법 제815조 제1호에 따라 무효라고 한 사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