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가 이혼할 때 예금이나 부동산을 나누는 것은 비교적 명확합니다. 하지만 부부 한쪽이 다른 사람에게 돈을 빌려주고 못 받고 있거나, 반대로 돈을 빌리면서 배우자가 보증을 섰다면 계산이 매우 복잡해집니다.
이혼 소송에서 이런 악성 채권(떼인 돈)이나 보증채무는 어떻게 정리될까요? 기계적으로 절반씩 나누어 책임지게 될까요?
서울고등법원 판결(2002르2424)을 통해 법원의 현실적인 판단 기준을 살펴보겠습니다.
목차
사실 관계
이 사건의 부부는 혼인 기간 중 다른 사람들과 얽힌 복잡한 돈 문제 세 가지를 가지고 이혼 법정에 섰습니다.
- 보증채무 문제: 아내(원고)가 남편(피고)의 형수에게 돈을 빌렸고, 남편이 이 빚에 대해 보증을 섰습니다.
- 지인 A에게 빌려준 돈: 부부 공동재산 2억 원을 지인 A에게 빌려줬으나 A가 돈을 갚지 못할 상황이 되었습니다. 대신 A 동생 명의의 빌라 5채로 대물변제를 받기로 약속해 둔 상태였습니다.
- 지인 B에게 빌려준 돈: 부부 공동재산 1억여 원을 지인 B에게 빌려줬으나, B는 자금 사정이 극도로 악화되어 전혀 돈을 갚을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
남편은 자신이 보증을 선 빚도 재산분할에서 빚(소극재산)으로 쳐서 계산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법원의 판단 1: 남편이 보증 선 빚은 재산분할에서 아예 빼버렸다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법원이 아내가 빌리고 남편이 보증 선 빚을 재산분할 계산표에서 아예 제외해버렸다는 점입니다. 여기에는 법원의 아주 현실적인 고민이 담겨 있습니다.
원칙적으로 부부 공동생활이나 재산 형성을 위해 빌린 돈이라면 빚도 나누어 분담하는 것이 맞습니다. 문제는 주채무자인 아내가 재판 과정에서 “나는 그 빚을 갚을 생각이 없다”는 태도를 명백히 보였다는 것입니다.
만약 법원이 원칙대로 이 빚을 아내의 소극재산(빚)으로 인정해서 전체 재산을 계산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아내는 이혼 후에도 돈을 갚지 않을 것이고, 결국 채권자인 형수는 보증인인 남편에게 돈을 받아낼 것입니다. 그러면 남편은 보증인으로서 돈을 다 물어준 뒤, 다시 아내를 상대로 “내가 대신 갚았으니 돈을 내놔라”라며 구상금 청구 소송을 또 제기해야 합니다.
법원은 이처럼 이혼 소송이 끝난 후 똑같은 돈 문제로 다시 민사 소송이 벌어지는 무익하고 소모적인 상황을 막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차라리 처음부터 이 차용금 채무와 보증채무를 두 사람의 재산분할 계산에 넣지 않고 내버려 두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법원의 판단 2: 떼인 돈은 회수 가능성에 따라 다르게 취급한다
누군가에게 빌려준 돈(채권) 역시 부부의 공동재산입니다. 하지만 상대방이 파산해서 받을 가능성이 없다면 그 가치는 0원입니다. 법원은 두 지인에 대한 채권을 철저히 현실적인 회수 가능성에 따라 나누어 판단했습니다.
A에 대한 2억 원 채권은 살렸습니다.
A가 현금으로 갚을 능력은 없었지만, 다행히 빌라 5채로 대신 갚겠다는 대물변제 약정이 있었습니다. 법원은 이 빌라들의 시세에서 이미 들어와 있는 세입자들의 보증금을 빼고 남은 순수 가치(약 1억 5천만 원)만큼은 실제로 건질 수 있는 돈이라고 보아 재산분할 대상에 포함시켰습니다.
B에 대한 1억여 원 채권은 버렸습니다.
B는 대물변제할 재산도 없이 완전히 파산한 상태였습니다. 법원은 이를 현실적으로 회수가 불가능한 부실 채권으로 확정 짓고, 재산분할 대상에서 완전히 제외했습니다. 장부상으로만 존재하는 돈을 부부의 재산으로 잡아 나누면, 한쪽이 억울하게 실제보다 적은 돈을 받게 되기 때문입니다.
실무상 의미
첫째, 채무가 있다고 해서 무조건 빚으로 인정받아 내 몫을 방어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내가 배우자의 빚에 보증을 선 경우, 주채무자인 배우자가 빚을 갚을 능력이 있는지, 아니면 결국 내가 보증인으로서 갚게 될 상황인지에 따라 법원의 처리 방식이 완전히 달라질 수 있습니다.
둘째, 못 받고 있는 돈이나 부실한 채무가 있다면 적극적으로 증명해야 합니다.
빌려준 돈이 서류상 남아있더라도, 상대방이 갚을 능력이 없다는 점(부실 채권)을 재판 과정에서 명확히 입증해야 억울하게 내 재산 액수가 부풀려지는 것을 막을 수 있습니다. 반대로, 포기했던 돈이라도 담보나 대물변제 약정이 있다면 그 가치만큼은 재산으로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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