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간 혼인 생활을 이어온 부부가 황혼 이혼을 결심할 때쯤이면 자녀들도 이미 다 자란 성년인 경우가 많습니다. 이때 부부 중 한쪽이 재산분할 소송에서 법원에 강력히 호소하는 단골 레퍼토리가 있습니다.
“우리 애들 아직 결혼도 안 했는데, 나중에 결혼할 때 큰돈이 들어갑니다. 저 사람은 이혼하면 애들한테 눈길 한번 안 줄 테니, 제가 그 결혼자금을 떼어놓고 보관할 수 있게 재산분할에서 제 몫을 더 인정해 주십시오.”
부모로서의 애틋한 마음은 충분히 공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법의 잣대 앞에서도 이런 주장이 통할까요? 대법원 판결(2003므941)을 통해 그 기준을 명확히 살펴보겠습니다.

목차
법원이 재산분할 비율을 정할 때 고려하는 참작 사유
원칙적으로 이혼 재산분할은 부부가 혼인 기간 중 함께 모은 전체 재산을 공평하게 나누는 과정입니다. 법원은 특정 재산을 누가 샀는지(개별 기여도)만 보지 않고, 다음과 같은 다양한 사정을 후견적인 입장에서 폭넓게 참작하여 최종적인 분할 비율(예: 남편 60%, 아내 40%)을 결정합니다.
- 혼인 기간 및 파탄의 경위: 누가 잘못했는지, 얼마나 오래 살았는지
- 재산 형성과 유지에 대한 기여: 맞벌이인지, 전업주부로서 가사와 양육을 전담했는지
- 양측의 경제적 상황: 나이, 건강, 직업, 소득, 이혼 후 자립 가능성 등
이처럼 법원이 참작할 수 있는 사유가 넓다 보니, 당사자들은 “앞으로 다가올 자녀의 큰 지출(결혼, 유학 등)도 이혼 후의 생활 보장 차원에서 당연히 고려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게 됩니다.
⚖️ 대법원의 판단: “부부의 재산분할과 성년 자녀 부양은 완전히 별개다”
대법원은 성년 자녀의 장래 결혼자금을 재산분할 비율에 참작해달라는 주장에 대해 매우 단호하게 선을 그었습니다.
“이혼하는 부부의 자녀들이 이미 모두 성년에 달한 경우, 부(父)가 자녀들에게 부양의무를 진다 하더라도 이는 어디까지나 부(父)와 자녀들 사이의 법률관계일 뿐, 이를 부부의 이혼으로 인하여 이혼 배우자에게 지급할 위자료나 재산분할의 액수를 정하는 데 참작할 사정으로 볼 수는 없다.” (대법원 2003. 8. 19. 선고 2003므941 판결)
이 판결의 핵심 논리는 ‘당사자의 분리’입니다.
1. 성년 자녀에 대한 부양은 법적 의무가 아니다
미성년 자녀를 양육하는 부모에게는 강력한 법적 양육 의무가 있습니다. 그래서 미성년 자녀를 키우는 쪽(양육권자)에게는 이혼 후의 생활 보장과 양육의 어려움을 고려하여 재산분할 비율을 조금 더 높여주는 경우가 실무상 흔합니다.
그러나 자녀가 성년이 되면 부모의 법적인 양육 의무는 끝납니다. 도의적으로 결혼자금을 대주고 싶다 하더라도, 그것은 부모 개인의 선택이지 법이 강제할 부양의무가 아닙니다.
2. 배우자와 자녀 사이의 채권·채무를 부부 재산에서 뺄 수 없다
설령 아버지가 성년 자녀를 경제적으로 지원할 책임(부양의무)을 진다고 가정하더라도, 그것은 ‘아버지와 자녀’라는 두 사람 사이의 별개 법률관계입니다.
그 책임을 다하기 위해, 부부가 혼인 기간 중 힘들게 모아 ‘아내’에게 돌아가야 할 정당한 재산분할 몫을 미리 깎아서 아버지가 챙겨두는 것은 법리적으로 전혀 맞지 않다는 뜻입니다.
감정에 호소하는 전략의 한계
이혼 소송 현장에서 당사자나 변호사가 이 주장을 꺼내는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진짜로 자녀가 걱정돼서이고, 다른 하나는 어떻게든 내 기여도를 1%라도 더 높여보려는 ‘일단 던져보는 주장’입니다.
하지만 이 대법원 판결이 보여주듯, 아무리 부모의 마음이 절절하더라도 ‘성년 자녀의 결혼자금 보관’은 법관을 설득할 수 있는 적법한 참작 사유가 되지 못합니다.
따라서 재산분할 소송을 유리하게 이끌기 위해서는 감정적인 호소에 기대기보다, 다음과 같은 실질적인 법적 기여도 방어 전략에 집중해야 합니다.
- 미성년 자녀의 양육비와 재산분할은 별개입니다.
성년 자녀와 달리, 자녀가 아직 미성년자라면 상대방으로부터 매달 양육비를 받을 수 있습니다. 만약 상대방이 양육비를 안 줄 것 같아 불안하다면, 양육비를 한 번에 미리 정산받는 일시금 청구 방식을 고려하거나, 차라리 재산분할 액수에 양육비 미지급분 상당을 얹어달라고 구체적으로 주장하는 것이 현실적입니다. - 과거에 이미 자녀 명의로 묶어둔 재산의 처리
앞으로 들어갈 결혼자금을 빼놓는 것은 안 되지만, 혼인 기간 중 부부가 합의하여 이미 자녀 명의의 통장이나 부동산으로 증여를 마친 재산이 있다면, 이는 원칙적으로 부부의 재산분할 대상에서 제외됩니다. (단, 명의만 자녀 이름으로 빌린 차명 재산임이 밝혀지면 다시 분할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 혼인 중 나의 기여 입증에 집중하십시오
황혼 이혼의 경우, 20~30년간의 가사노동과 내조, 자녀를 성년으로 훌륭히 키워낸 과거의 노고 자체가 높은 기여도니다. 장래의 모호한 결혼자금 보다, 그동안 내가 어떻게 가정 경제를 지켜왔는지를 꼼꼼히 입증하는 것이 승소의 지름길입니다.
재산분할에서 나의 기여도를 최대로 인정받고, 미성년 자녀에 대한 양육 상황을 유리하게 참작받는 기준에 대해서는 아래 허브글을 반드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