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혼이 파기되면 함께 형성한 재산에 대하여 재산분할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실제 분쟁에서는 적극재산만큼이나 채무를 어떻게 볼 것인지가 중요한 쟁점이 됩니다. 특히 주택에 설정된 근저당권 채무나 주택담보대출은 단순한 개인 채무인지, 아니면 공동재산의 형성과 유지에 수반된 채무인지에 따라 재산분할 결과가 크게 달라질 수 있습니다.
이번에 살펴볼 판결은, 사실혼 종료 후 일방이 주택 관련 채무를 변제한 경우 그 부담을 재산분할 과정에서 고려할 수 있는지가 문제된 사안입니다. 대법원은 채무의 발생 시점만 형식적으로 볼 것이 아니라, 그 채무가 본래 공동재산의 형성에 수반된 것인지를 실질적으로 심리해야 한다고 판단하였습니다.
대법원 2021. 5. 27. 선고 2020므15841 판결

목차
사실혼에서도 재산분할
사실혼은 혼인신고만 되어 있지 않을 뿐, 실질적으로는 부부공동생활이 존재하는 관계입니다. 따라서 사실혼이 인정되는 경우에는 법률혼의 재산분할 법리가 유추 적용될 수 있습니다.
즉, 두 사람이 사실상 부부로서 함께 생활하며 재산을 형성하였다면, 관계가 종료될 때 그 공동형성 재산을 청산하는 것이 형평에 맞다는 취지입니다.
다만 사실혼 사건에서는 언제나 한 가지 전제가 있습니다. 바로 사실혼 관계 자체가 인정되어야 비로소 재산분할 문제로 나아갈 수 있다는 점입니다.
채무는 언제 재산분할의 대상이 될까
재산분할이라고 하면 흔히 부동산, 예금, 자동차처럼 눈에 보이는 적극재산만 떠올리기 쉽습니다. 그러나 실무에서는 채무 역시 중요한 청산 요소가 됩니다.
원칙: 일방의 채무는 개인 채무로 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혼인 중 부담한 채무라고 하여 모두 재산분할의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원칙적으로 부부 일방이 제3자에게 부담한 채무는, 일상가사에 관한 것이 아닌 한 개인 채무로 보아 청산 대상에서 제외될 수 있습니다.
예외: 공동재산의 형성에 수반된 채무는 청산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반면, 채무가 단순한 개인 소비나 독자적 투자에서 발생한 것이 아니라, 부부 공동재산을 형성하거나 유지하는 과정에서 부담된 것이라면 사정이 달라집니다.
예를 들어,
- 공동으로 거주할 주택을 마련하기 위한 대출,
- 공동생활의 기반이 되는 부동산 취득을 위한 담보대출,
- 공동재산의 유지·보존을 위한 금융채무
등은 재산분할 과정에서 함께 고려될 수 있습니다.
특히 사실혼 관계에 있던 일방이 공동재산 형성에 수반한 채무를 사실혼 종료 후 변제하였다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그 변제된 채무 역시 재산분할에서 청산 대상으로 반영될 여지가 있습니다.
사건의 사실관계
이 사건의 핵심 사실관계는 다음과 같습니다.
- 당사자 사이의 사실혼 관계는 2018. 8. 7.경 종료되었습니다.
- A부동산은 재산분할 대상 재산으로 문제된 부동산이었습니다.
- 그런데 사실혼이 종료되기 전인 2014. 7.경, 위 부동산에 관하여 농협은행 명의의 근저당권이 설정되어 있었습니다.
- 이후 사실혼 종료 후인 2018. 9.경, 기존 근저당권이 말소되고 같은 날 국민은행 대출을 받아 다시 근저당권이 설정되었습니다.
피고는 이와 관련하여, 국민은행 대출금 채무 역시 실질적으로는 사실혼 관계 중 형성된 재산과 관련된 부담이므로 재산분할에 반영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표면적으로 보면 국민은행 대출은 사실혼 종료 후 발생한 채무입니다. 그래서 얼핏 보면 재산분할 대상에서 제외하는 것이 자연스러워 보입니다. 그러나 대법원은 이 사안을 그렇게 단순하게 보지 않았습니다.
원심은 채무 발생 시기에 집중해서 불인정
원심은 국민은행 대출금 채무가 사실혼 관계 종료 후 발생한 채무라는 점에 주목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사정만을 이유로, 해당 채무를 재산분할 대상에서 제외하였습니다.
문제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들어가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즉 원심은,
- 그 이전에 존재하던 농협은행 대출금 채무가
- 언제, 어떤 원인으로 발생하였는지,
- A부동산의 형성과 유지에 수반된 채무였는지,
를 충분히 심리하지 않은 채 판단하였습니다.
⚖️ 대법원의 판단
대법원은 원심 판단이 충분하지 않다고 보았습니다. 핵심은 국민은행 대출금 채무라는 외형이 아니라, 그 채무가 실질적으로 기존 농협은행 채무를 변제하기 위한 것인지, 그리고 그 기존 채무가 공동재산 형성에 수반된 것인지를 따져야 한다는 데 있었습니다.
대법원이 본 핵심 포인트
- 피고는 사실혼 기간 중 A부동산 형성에 수반하여 농협은행 대출금 채무를 부담하였고,
- 사실혼 종료 후 그 기존 채무를 변제하기 위하여 국민은행 대출금 채무를 부담한 것으로 볼 여지가 있으며,
- 그렇다면 단순히 “새 대출이 종료 후 발생했다”는 이유만으로 배제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대법원은 결국, 원심으로서는 사실혼 종료 당시 A부동산 형성에 수반한 농협은행 채무가 존재하였는지를 먼저 심리한 뒤, 그 채무가 재산분할의 청산 대상인지 판단했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이 판결의 의미: 채무는 ‘발생 시기’보다 ‘성격’이 중요합니다
이 판결이 중요한 이유는 매우 분명합니다.
재산분할에서 채무를 볼 때, 법원은 단지 언제 발생했는지만 보아서는 안 되고, 무엇을 위해 부담된 채무인지를 함께 보아야 한다는 점을 확인해 주기 때문입니다.
이 사건이 보여주는 실무상 포인트
- 사실혼 종료 후 발생한 대출이라고 하더라도,
- 그것이 사실혼 중 형성된 공동재산 관련 채무를 정리하기 위한 것이라면,
- 실질적으로는 재산분할에서 고려될 수 있습니다.
즉, 채무를 단순히 “종료 후 채무니까 제외”라고 정리하면 안 되고,
기존 공동재산과의 연결성, 대환 여부, 변제 경위, 채무의 원래 목적을 구체적으로 살펴야 합니다.
실무상 실수?
아마도 피고의 주장은 형식상으로는 새롭게 발생한 국민은행 대출금 채무를 재산분할 대상으로 삼아 달라는 취지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원심이 이를 종료 후 채무로 보아 제외한 것 자체가 전혀 엉뚱한 것은 아닙니다.
대법원은 당사자의 주장을 보다 실질적으로 해석하였습니다. 즉, 피고의 진정한 주장은 새 대출 자체를 공동채무로 보아 달라는 것이라기보다, 그 대출로 정리된 기존 농협은행 채무가 공동재산 형성에 수반된 채무이므로 청산에 반영되어야 한다는 취지로 본 것입니다.
처음부터 단지 채무의 명목이 아니라 그 실질을 따져 반영해야 한다고 분명하게 주장을 개진하였다면 굳이 상소없이 판단을 받았을 수도 있습니다. 이 부분이 부족했던 것으로 짐작됩니다.
✓ 정리
이 사건은 사실혼 파기 후 주택담보대출이나 근저당권 채무가 문제될 때, 단순히 채무 발생 시점만으로 재산분할 대상 여부를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분명히 한 판결입니다.
핵심은 다음과 같습니다.
- 사실혼에서도 재산분할 법리는 유추 적용될 수 있습니다.
- 채무는 원칙적으로 개인 채무로 보지만, 공동재산의 형성·유지에 수반된 채무라면 청산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 사실혼 종료 후 변제하거나 대환한 채무라도, 그 실질이 사실혼 중 공동재산 관련 채무라면 재산분할에 반영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사실혼 재산분할 사건에서 주택담보대출이나 근저당권 채무가 있다면, 단순히 “언제 빌렸는가”만 볼 것이 아니라 무슨 목적으로 부담되었고, 어떤 채무를 정리한 것인지까지 면밀히 따져보아야 합니다.
이 사건은 사실혼 재산분할에서 적극재산뿐 아니라 채무의 성격도 함께 검토해야 한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사실혼 재산분할의 전체적인 내용은 [사실혼 재산분할 완벽 가이드]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